소설 / 출간일 2001.12.01 / 읽은날 2019.10.2

 

이 책 은 매우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쉽게 읽을 수는 있지만 작가의 정확한 의도를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 쉽게 읽어내려가지만,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고, 곱씹어 보게 되는 책이다. 이전에 학창시절에 읽어봤던 터라, 책은 빠르게 읽었지만, 마치 어린왕자 같은 느낌, 동화같은 이야기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작가의 의도를 간단하게 정리하기는 힘들다. 책 리뷰도 엄청나게 많이 있기 때문에 뭔가 리뷰를 쓰는것도 요즘은 가끔 부담스러운 생각이 든다. 다른 좋은리뷰들에 비해서 좋지 못한 리뷰일것 같은 생각도 들고,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느끼고 있으니, 나또한 산티아고 처럼 자아를 찾기위해 도망치지는 않기로 했다.

 

이책은 산티아고의 자아 찾기 여정이다. 그는 자신의 자아를 찾기위해 양치기가 되고, 보물을 찾아 떠난다. 여행을 떠나자마자 도둑을 만난 산티아고는 그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크리스탈 가게에 들어가 일을하며 다시 돈을 모아 떠날 생각을 한다. 그 장면이 아주 인상 깊었다. 나였으면 아마 화가 나고 분해서 다시 돌아왔을수도 있는데, 그 상황에서 그런식으로 모면해 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이외에도 산티아고는 여러 시련을 만난다.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갈까 말까 고민도 하고, 죽을위기에도 처한다. 산티아고 역시 그런 순간들이 올때마다 두려움을 갖지만, 위기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삶,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한걸음 내딛는 삶을 선택하는것 같다.

 

 

산티아고와 늙은왕이 대화하는 유명한 장면,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한때 유행했던 말이였던것 같은데, 책에서는 모든것이 그렇게 운명처럼 온 우주가 산티아고를 도와주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저말은 그저 소망이고 바람일 뿐 인것 같아서 약간 씁쓸하다. 

 

연금술사는 현대판 고전이라 불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받을 것 같다. 시간이 흘러서도 고전으로 남을것같고, 그리고 이책을 두번째 읽었지만, 그래도 나중에 한번 더 읽어 볼 생각이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많은것 같다. 지금 까지 계속해서 해답만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무언가에 도달했을때, 그것에 만족하고 있다가 시간이 가면서는 또 그것에 실망을 하고, 나는 아직 멀었다며 자책하고 주저앉아 버리곤 했다. 나는 아직도 나의 자아를 찾아가고 있는 여행자 이다. 나도 나의 자아를 찾아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발전하고 싶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 -62p

 

-'내가 때때로 불평하는 건, 내가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야. 인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지. 인간의 마음은 정작 가장 큰 꿈들이 이루어지는 걸 두려워해. 자기는 그걸 이룰 자격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이룰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사랑이나 잘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던 순간들, 어쩌면 발견할 수도 있었는데 영원히 모래 속에 묻혀버린 보물 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두려워서 죽을 지경이야. 왜냐하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아주 고통받을 테니까.'

마음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마음은 고통받을까 두려워하고 있어요."

달이 뜨지 않은 어두운 하늘을 함께 올려다보고 있던 어느 날 그가 연금술사에게 말했다.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 거라고 대의 마음에게 일러주게. 어떠한 마음도 자신의 꿈을 찾아나설 때는 결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꿈을 찾아가는 매순간이란 신과 영겁의 세월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일세." -212~213p

 

일본소설 / 출간일 2012.7.20 / 읽은 날 2019.8.16

 

인생에서의 마법은 끝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스물아홉 생일로부터 1년간의 치열한 기록을 담은 하야마 아마리의 자전적 에세이『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이 작품은 스물아홉의 나이에 스스로 1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던 저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변변한 직장도 없고, 애인에게는 버림받았으며, 못생긴 데다 73킬로그램이 넘는 외톨이였던 저자는 혼자만의 우울한 스물아홉 생일을 보내던 중 깜깜한 터널과도 같은 인생에 절망하며 자살을 결심한다.

그러나 죽을 용기마저 내지 못하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며 텔레비전 화면에 무심코 시선을 던진 저자는 눈앞에 펼쳐진 너무도 아름다운 세계, 라스베이거스에서 최고로 멋진 순간을 맛본 뒤에 죽으리라 결심하고 1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한다. 절망에 빠져 있을 때는 혼자만 힘들다는 생각에 괴로워했지만 1년의 치열한 삶을 통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이야기하며, 죽음을 주시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갖는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정말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지금껏 여러종류의 책을 읽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했었는데, 이책이 쉽게 잘 읽히기도 하지만, 역시 마음이 가는 책이라 그런지 내마음 같아서 인지 몇시간만에 훌쩍 읽어버렸다. 시간죽이기용 소설이기는 한데, 생각보다 꽤 마음에 드는 문장들도 많았다.

 

열두발자국에 나왔던 '메멘토 모리'를 이용해서 주인공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죽음을 앞두면 무서울것이 없다. 미련이 남을 것도 없다. 29살 생일에도 여전히 혼자이며, 돈도없는 자신을 보면서 죽고싶지만 죽을용기조차 없는 그 절박하고 답답함. 내가 느꼈던것과 너무 똑같아서 마음이 먹먹했다.

 

소설이니만큼 뚱뚱한데도 불구하고 누드모델을 한다거나, 술집일을 한다는건 현실적이지는 못하지만, 정말 죽을마음을 먹지 않으면, 사람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저정도로 마음을 먹고 잠도 줄이고 살아가면, 정말 못해낼일이 없을것같다. 근데 그러지 못하는게 문제다.

 

나도 아마리 처럼 죽기전에 이루고 싶은 그무언가를 찾아보려고 한다. 아직도 이 휴지조각 같은 삶에 어떠한 미련이 있는걸까? 죽는것과 다름 없는 삶을 살고있는것 같다. 책으로 어떠한 답을 찾아보려는건 아니고, 아니 이책에서 처럼 정답은 결국 내안에 있다. 나또한 그걸 찾지 못했다.

 

1년후에 내가 죽는다면, 나는 오늘부터 무엇을 할까? 1년의 시간이 내게 남아있다면 나는 그 1년을 어떻게 살아갈까?  그렇다면 나는 우주를 움직일만한 내안의 간절한 무언가를 꺼내볼수 있을까.  

 

-처음엔 물이 뜨겁지 않았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끓는 물에 들어온 개구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21p

 

-"세상은 널 돌봐줄 의무가 없다. 그리고 너에겐 어떤 일이든 생길수 있다." -34p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친구를 그리워했다. "아냐, 열심히 하면 좋은일이 생길거야"라고, 거짓말로라도 격려해 줄 그런 친구가 그리웠다. 하지만 나는 철저히 외톨이였다. -41p

 

-내가 알고 있는 나는 하나뿐이지만, 남들이 보는 나는 천차만별이었다. 사실 그림 속의 나는 '나'이면서 또한 내가 아니었다. 내가 느끼는 나와 남이 느끼는 내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과 느낌은 십인십색. 사람의 숫자만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나와 똑같은 느낌을 요구하거나 이해해 달라는것은 무리고 어리광이며, 오만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진정한 의미에서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나에 대한 남들의 느낌을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 뿐이다. -107p

 

-이제부터 맞이하게 될 수많은 '오늘들'은 나에게 늘 선물과도 같을것이다. 나는 죽는순간까지 '내일' 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나의 인생은 천금 같은 오늘의 연속일 테니까.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 키케로 -234p

 

독일 소설 / 출간일 1974.. / 읽은 날 2019.7.16 

 

1972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하인리히 뵐의 소설. 황색 언론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한 한 개인의 명예에 관한 보고서이다.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 폴커 슐렌도르프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소설은 소박한 카타리나 블룸이 어쩌다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는지 조사하며 닷새간 그녀의 행적을 재구성하여 이를 보고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1974년 2월 24일 일요일 한 일간지 기자가 살해당한다. 살인범은 27세의 평범한 여인, 카타리나 블룸. 그녀는 경찰에게 그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자백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가정관리사로 일하면서 성실하고 진실한 태도로 주위의 호감을 샀던 총명한 여인 카타리나. 그런 그녀가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1970년대의 독일의 모습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것, 아니 어쩌면 전 세계가 같지 않을까. 잘못된 언론보도로 인해, 언론은 한 사람의 인생을 아무렇지 않게 무참히 짓밟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짓밟힌 그녀의 인생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는 걸까. 그녀의 살인은 정당한 것일까. 아니면 그럼에도 살인은 용서되지 않는 것 일까. 많은 생각이 들게됐다.

 

책은 얇아서 어쩌면 쉽고 빠르게 읽어내려 갈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잘 읽히지 않았던건 일단은 이름이 어려워서 헷갈렸다. 그것때문에 자꾸 걸려서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당시 시대의 독일의 배경을 잘 몰라서 배경이해의 약간의 어려움도 있었다.

 

작가는  제2차 세계대전의 혼란한 사회와 인간을 그린 작품이 많다고 한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시대의 무언가를 많이 보고 느끼셨을것이라 생각된다. 많은 작품이 있지만, 번역본이 많이 나온것 같지는 않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

 

독일 영화 '타인의 삶' 2007.03.22. 개봉

 

책을 읽으면서, 독일 작품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영화 '타인의 삶'이 생각났다. 검색을 해보니 타인의 삶은 1980년대 배경인데, 뭔가 도청을 한다던가, 좌파로 몰아가는 것 같은것들이 그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언론이 한사람을 살인으로 까지 몰아가는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영화인데, 그냥 왜인지 모르게 생각이 났다. 

 

정말 좋아했던 영화였는데, 그 영화의 분위기와 책이 닮은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정말 명작이라, 책리뷰에 쓸건 아닌것 같아서 생략하려 한다. 영화를 보고 가슴먹먹해 눈물이 나기도 했었는데, 아무튼 책과 영화가 닮아있다는것이 그당시 독일사회의 배경이였을거라 생각이 된다.  

 

 

-마지막으로 반전시키거나 끌어들이거나 옆길로 흐름을 유도하는 작업이 시작되기 전에 여기에서 소위 기술적으로 끼어들어 한마디 해야겠다. 이 이야기에서는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난감하고 다 다룰수 없을 만큼 파란만장 하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단점이다. 물론 프리랜서로 일하는 어느 가정부가 기자를 살해한다면 그건 상당히 우울한 이야기다. 그런 경우는 실상을 낱낱이 밝히거나 최소한 설명하려고 시도는 해야한다.

 

-이들은 한편으로 매스컴을 타기를 원하지만, 단지 특정한 방식으로만 그럴뿐이다. 그저 동시에 이야기될 수 없는, 지속적인 흐름(내지는 자연스러운 이야기 진행)을 방해하는 사물과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은 소위 면연성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소설 / 출간일 2017.6.28 / 읽은 날 2019.7.22

 

김애란이 선보이는 일곱 편의 마스터피스. 작가 생활 15년간 끊임없이 자신을 경신해오며,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의 이야기를 우리의 언어로 들었을 때 느끼게 되는 친밀감과 반가움, 그 각별한 체험을 선사해온 저자가 《비행운》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신작 소설집 『바깥은 여름』. 제37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 제8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포함한 일곱 편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소설집의 문을 여는 작품 《입동》은 사고로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의 부서진 일상을 따라가며 독자로 하여금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다가도, 그 고통이 감당 가능한 범위를 넘어섰을 때는 고개 돌려 외면해버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상기하게 만든다. 십대 무리와 노인과의 실랑이 끝에 노인이 죽는 사건이 일어난 후 그 사건의 목격자인 ‘나’의 아들 ‘재이’가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편견에 둘러싸이고, 그런 편견 사이에서 천진하다고만 생각한 아이에게서 뜻밖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나’의 이야기를 담은 《가리는 손》 등의 작품을 통해 가까이 있던 누군가를 잃거나 어떤 시간을 영영 빼앗기는 등 상실을 맞닥뜨린 인물들, 친숙한 상대에게서 뜻밖의 표정을 읽게 되었을 때의 당혹스러움 같은 것을 마주하게 된다.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책은 빠르게 읽혔다. 단편들 모두 무언가의 상실에 관한 이야기 였다. 아이의 상실, 반려견의 상실, 언어의 상실, 오래된 연인의 상실, 남편의 상실 같은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그래서 소재에 대한 흥미보다는 평범한 이야기 속에 작가의 필체가 좋았다. 주인공들의 생각 묘사 같은 것들이 좋아서 생각보다 필사하고 싶은 문장이 많았다.

 

그렇지만 아주 슬프지는 않았다. 그리고 뭔가 젊은 작가상을 보고 읽어서 그런지 연륜이 느껴지는 문장이라는 기분이 많이 들었다. 오래된 젊은 커플 이야기인데도 뭔가 젊은 느낌이 덜한 기분이 들었다. 이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보지만 나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이 책이 너무 슬프고 우울하다고 하는데, 몇 가지 마음 아픈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렇게 우울한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그런 상실감들에 익숙해서 그런 거 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허탈하게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생각해보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상실감이고, 작가의 말처럼 '다른 사람들은 몰라.' 하는 기분을 나도 잘 안다. 나의 슬픔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기사 한 줄 일수도 있고, 안주거리가 될 수도 있는것처럼. 그 기분을 잘 표현한 것 같아서 가슴이 조금 먹먹했다.

 

-입동

우리는 알고있었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현 이웃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 그래서 흰 꽃이 무더기로 그려진 벽지 아래 쪼그려 앉은 아내를 보고 있자니,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한파가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두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36~37p

 

-노찬 성과 에반

잠이 오지 않을 때 찬성은 어둠 속 빈 벽을 바라보며 자주 잡생각에 빠졌다. 그럴 땐 종종 할머니가 일러준 '용서'라는 말이 떠올랐다. 없던 일이 될 수 없고, 잊을 수도 없는 일은 나중에 어떻게 되나. 그런 건 모두 어디로 가나.  -45p

 

-어디로 가고 싶으신 가요

어쩌면 그날. 그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녔을까. 참으려고 했는데 굵은 눈물방울이 편지지 위로 투둑 떨어졌다. 허물이 덮였다 벗어졌다 다시 돋은 내 반점 위로, 도무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얼룩 위로 투두둑 퍼져 나갔다. 당신이 보고 싶었다.  -266p

 

 

 

한국소설 / 출간일 2009.3.27 / 읽은 날 2019.7.4

 

마법의 빵이 만들어지는 곳, 위저드 베이커리
제2회 창비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구병모의 장편소설 『위저드 베이커리』. 2008년의 <완득이>를 잇는, 2009년 창비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집에서 뛰쳐나온 열여섯 살 소년이 우연히 머물게 된 신비한 빵집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을 그리고 있다. 미스터리와 호러와 판타지를 넘나드는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과 서사적 역량이 돋보인다.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나온지 10년이나 됐는데, 이제야 이런 명작을 보다니. 이것도 중고서점에서 구매한 책이다. 책은 너무나 잘 읽혀서 펼쳐 들고 한 번에 끝까지 쭉 읽었다. 성장소설 이면서도 판타지 적인 요소가 섞여 있다.

 

과한 판타지도 아니고 딱 적당한.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와 필력, 또 한번 우리나라에도 대단한 작가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좋은 스토리는 어떻게 생각해내는 것일까. 늘 좋은 작품을 만나면 그런 궁금함과 동경의 마음이 생긴다. 작가의 여러 작품이 있으니 다른 작품도 읽어 보고 싶어 졌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들의 필체나 분위기가 다양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래서 책을 많이 읽어봐야 하나 보다. 너무 멋진 이야기와 만나서 좋았다.

 

-타임 리와인더

우주는 왜 저런 빵처럼 단순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시간은 왜 커피 맛 식용 종이처럼 입속에서 녹아버리지 않을까. 사람의 영혼은 어째서 웨이퍼처럼 바삭거리며 간단히 부서져 버릴 수 없을까. -182p

 

무엇보다도 사람의 감정은 어째서, 뜨거운 물에 담은 소금처럼 녹아 사라질 수 없는 걸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치 통조림만도 못한 주제에. 그러다 문득 소금이란 다만 녹을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는걸 깨닫는다. 어떤 강제와 분리가 없다면 언제고 언제까지고 그 안에서. -185p

 

-N의 경우

머릿속에서 이성의 목소리가 내게 말을 건넨다. 추억은 그대로 상자속에 박제된 채 남겨두는 편이 좋아. 그 상자는 곰팡이나 먼지와 함께, 습기를 가득 머금고서 뚜껑도 열지 않은 채 언젠가는 버려져야만 하지. 환상은 환상으로 끝났을 때 가치 있는 법이야. 한때의 상처를 의탁했던 장소를 굳이 되짚어 가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아. 아직도 어린 시절의 마법 따위를 믿는 녀석은 어른이 될 수 없다고.

그러나 나는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더욱 빨리 달린다. 추억이라니. 환상이라니. 그 모든것은 내게 있어서는 줄곧 현재였으며 현실이었다. 마법이라는 것 또한 언제나 선택의 문제였을 뿐 꿈속의 망중한이 아니었다. 지금은 나의 과거와, 현재와, 어쩌면 올 수도 있는 미래를 향해 달린다.  -248p

 

N의 경우와 Y의 경우로 나눈 두 가지의 엔딩이 있다. 어느 하나 선택하기 힘들 정도로 두 가지 엔딩 모두 좋았다. 이 책에서는 선택에 대한 이야기들이 자주 나오지만, 선택하기 힘든 엔딩이다. 정말 위저드 베이커리가 존재한다면, 주문이 끊임없을 것 같다. 나는 어떤 빵을 주문할까, 아마도 실패했던 무언가에 대한 주문을 하지 않을까..

 

주인공 소년의 아픈 가정사 이야기와 치유받아가는 과정을 그린 청소년 책이긴 하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기분 좋아지는 책이었다.

 

소설 / 출간일 2019.4.5 / 읽은 날 2019.7.31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젊은 작가들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문학동네에서 2010년에 제정한 문학상이다. 등단 십 년 이내의 작가 작품 중 전년도 1월부터 12월까지 한 해 동안 문예지를 비롯한 각종 지면에 발표된 신작 중·단편 소설을 심사 대상으로 삼는다. 2019년 올해로 10주년을 맞이 했다. 책을 구매해본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올해의 대상은 정말 '핫' 하고 '영' 한 박상영 작가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이 수상하였다. 대상작 외에  김희선 '공의 기원' , 백수린 '시간의 궤적', 이주란 '넌 쉽게 말했지만', 정영수 '우리들', 김봉곤 '데이 포 나이트', 이미상 '하긴' 이렇게 총 7개의 젊은작가들의 단편이 있다. 단편으로 되어있어서 한작품씩 보는 재미가 있었다.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 좋았던 작품도 있었고, 별로였던 작품도 있었다. 이건 주관적인 것이니 사람마다 다를 것 같다. 

 

우선, 대상작은 퀴어 이야기라는 점이 생각보다 충격적이면서 신선했다. 박상영 작가님의 글은 처음 읽어봤는데, 정말 젊은작가 같았다. 신선하고 젊은 느낌, 웃기면서도 가끔씩 나오는 슬픔은 또 슬픈 대로 멋지게 시원하게 표현하는 게 참 좋았다. 정말 작가 자신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표현해 냈다. 자기 이야기였던 것처럼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게 이 작가의 매력이라고 한다.

 

사실 퀴어 이야기에 공감하기는 힘들다. 우리나라에선 그 시선이 곱지 못한것도 사실이고, 그런 점을 충실한 기독교인 어머니로 동성애자는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그래서 정신병원에 보내버리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러한 어머니와의 갈등은 끝까지 가고, 사과받고 싶지만 사과받지 못하고, 용서하고 싶지만 용서할 수 없음으로 마무리 된다.

 

정말 한국적이라고 생각했다. 내 주변에만 해도 동성애자는 정신적인 병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 정말 그것은 정신병일까, 아니면 남들과 조금 다른 것일 뿐일까, 만약 친구가 동성애자임을 고백한다면, 나는 이해하겠지만 나의 아이가 그런 말을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말 어려운 문제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다 똑같은 사랑이다. 아름다운 사랑이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 뿐이다..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가. 내게 있어서 사랑은 한껏 달아올라 제어할 수 없이 사로잡혔다가 비로소 대상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추악하게 변질되어버리고야 마는 찰나의 상태에 불과했다.  -82p

 

핏줄이 연결된 것처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존재가, 실은 커다란 미지의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인생의 어떤 시점에는 포기해야 하는때가 온다는 것을. 그러니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생각을 멈추고, 고작 지고 뜨는 태양 따위에 의미를 부여하며 미소 짓는 그녀를 그저 바라보는 일. 그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일. 그녀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버리기를 바라는 일이다.  -90~91p

 

대상작 외에 개인적으로 좋았던 작품은 정영수 작가의 '우리들' 이였다. 불륜남녀의 글을 써주기 위해 그들과 만나 대화를 하다가 무산되어버리는 이야기 이다. 솔직히 이야기 자체의 특별함이랄까 그런 건 없었다. 어떻게 보면 불륜 이야기나 그들을 보며 옛 여자 친구를 그리워한다거나 하는 건 진부한 이야기이다. 근데 그냥 작가의 문체가 좋아서 좋았다. 별것없는 이야기에도 좋은 문체로 살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우리들

나는 회의로 가득차 있었고, 어디에서든 자그마한 희망의 불씨라도 발견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희망이란 때때로 멀쩡하던 사람까지 절망에 빠뜨리곤 하지 않나? 아니, 오로지 희망만이 인간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게다가 희망은 사람을 좀 질리게 하는 면이 있는데, 우리들은 대체로 그런 탐스러워 보이는 어떤 것들 때문에 자주 진이 빠지고 영혼의 바닥을 보게 되고 회한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237p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그것을 복기하는 일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이니까. 그것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새로 살아내는 것과 같은 일이니가. 그러니까, 읽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고독한 일이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글을 쓰다가 어쩌면 내가 영원히 혼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게 문득 참을 수 없이 괴로워졌다.  -264p 

 

한국 중편 소설 / 출간일 1978.6.30 / 읽은 날 2019.7.4

 

대한민국에 난쏘공을 안 읽어본 사람이 있을까, 중고서점에 여러 권이 꽂혀있던 난쏘공은 입시를 위해 읽었던 그때, 어렴풋이 슬펐던 생각나서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른이 된 내가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책을 보면서 펑펑 운 것은 어릴 적 읽었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이후로 처음이었다.

 

어른이 돼서 읽게 된 이 책은 정말 지독한 현실 그 자체여서 이렇게 까지 다르게 읽힐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작가가 슬퍼하던, 그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1970년대의 현실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달라진 게 없고, 여전히. 우리는 공감하고 있다. 현재까지 거의 137만 부가 팔렸다는 이 책의 작가는 단 한 권의 연작소설로 한국 현대 문학의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된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다. 더 이상 책을 내고 있지는 않고, 아직도 난쏘공이 팔린다는 것에 40년 전 그때와 달라진 게 없어 오히려 씁쓸하다고 했다. 

 

나는 이 책이 너무 좋다. 처음부터 끝까지 슬프고 암울한 것도 좋고, 단 하나의 희망조차 없는 냉혹함과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마음 아픈 이야기들이 아프고 슬퍼서 이 책을 읽고 나서, 정말 그 여운이 며칠이나 남았던 기억이 난다. 한국소설이라 더 감정이입이 많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문구점에서 노트하나, 볼펜 하나를 사서 그 자리에 앉아서 써내려 갔다는 이 소설, 그는 대체 무엇을 보았고, 슬퍼하고 좌절했을까, 어떤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써내려 갔을까.. 작가의 문체가 너무나 좋아서 정말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찬란한 비유나 은유보다는 하나하나의 상징성을.. 담담하고 잔잔하게, 슬프게 써 내려간 문장들, 그 담담함이 오히려 슬픔을 더 부각하고 스며들게 하는.. 난쟁이, 굴뚝, 까만 쇠공, 종이비행기, 달나라..

  

나는 70년대엔 존재하지도 않았고, 서울에선 살아본 적도 없다. 집이 없어 슬퍼해본 적도 없으니, 그 철거민의 마음도 이해할 수는 없다. 그 시대의 가난과도 거리가 멀고, 그런 독재 시절에 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가슴을 울리는 건, 철거민들의 투쟁은 내가 존재하던 시대에도 있었고, 공감할 수는 없어도, 느낄 수 있는 무언가. 지속되고 있는 그 무언가. 나 또한 겪었던,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 비인격적인 대우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런 소설을 시험 문제로 출제 하고 답을 찾아가야 하기 위해 읽는다는건 참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처럼 아마도 이해하지 못하지 않을까, 까만쇠공은 어떤 의미 였을까, 그것은 소망이였을까, 희망이였을까, 아버지의 자살은 결국 달나라에 도착했다는것일까, 그런것들에 대한 명확한 답이 있을까. 

 

결국, 고기굽는 냄새와 풀냄새로 대비되는 그때의 시절과, 금수저, 흙수저로 나뉘는 지금이 다를것은 뭐가 있을까, 엄마의 꿈대로 비극이 되어버린것. 그렇게 허무하게 난장이도, 그의 큰아들도 죽어서야 그 고통을 씻어낼수 있었던것, 슬픔과 비극으로 끝나는 소설은 누군가는 싫어하고 글쓰기를 할때도 주의를 하라고 많이 봤었는데, 나는 이 엔딩이 너무나 슬프고 좋았다. 작가는 비극적인 엔딩으로 쓴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어쩌면 그말은 맞는지도 모른다. 비극적인게 아니라. 그건 너무나 현실적이니까, 끝내 노동자는 이기지 못했을거니까. 끝내 가난함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나지 못했을테니까. 그때도. 지금도.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 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외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80p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나는 아주 단순한 세상을 그렸다. 아버지가 꿈꾼 세상보다도 단순했다. 달에가서 천문대 일을 보겠다는 것이 아버지의 꿈이었다. 그 꿈을 이루었다면 아버지는 오십억 광년 저쪽에 있다는 머리카락좌의 성운을 볼수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쌍한 아버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다. 

아버지는 생명을 갖는 순간부터 고생을 했다. 아버지의 몸이 작았다고 생명의 양까지 작았을 리는 없다. 아버지는 몸보다 컸던 고통을 죽어서 벗었다.  -212p

 

 

프랑스 소설 / 출간일 1959.. / 읽은 날 2019.7.11

'유럽 문단의 작은 악마', '섬세한 심리 묘사의 대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을 꼭 읽어 보고 싶었다.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민음사의 책을 몇 권 사 왔었는데 그중 하나였다. (민음사 시리즈를 도장깨기 하고 싶었는데 개인적으로 뭔가 길쭉한 저 디자인이 좀 싫다.. 그래서 요즘 일부러 다른 출판사 책을 사려고 함 ㅠㅠ) 가장 대표작은 '슬픔이여 안녕'인 것 같은데 국내에는 이제는 잘 출판하지 않는 것 같다.

 

사강이 24세 정도에 쓴 책이라고 하는데, 오래된 연인과의 권태로움, 30대 후반의 여자에 대한 심리묘사가 정말 섬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초반에 저런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역시 대단한 작가는 떡잎부터 다르다.

솔직하게 말하면 프랑스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기욤 뮈소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이 한창 유행일 때도 읽으면서 재미는 있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였던것 같다.  뭔가 프랑스 소설 특유의 느낌이 있다. 섬세하면서 머릿속이 약간 복잡해지는 난무하는 묘사들. 이 소설도 딱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제1장

마르크가 그녀에게 특유의 무사태평한 눈길을 보냈다. 그러자 즉각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행복감이 물러가고 조롱기가 차올랐다. 그 이후에도 그녀는 다른 이들과 함께 혹은 다른 이들로 인해 행복감을 맛보았지만, 그렇게 전적으로, 그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방식으로 행복했던 것은 그 순간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이를테면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대한 기억과 비슷했다.  -10p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에서 나오는 유명한 고발 구간이 있지만, 난 이 부분이 너무 좋았다. 정말 내가 느끼던 첫사랑의 기억과 너무나 같아서.. 그리고 저 섬세한 느낌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나 다시 읽었었다. 정말 여자여자한 느낌, 지나간 부질없는 사랑이지만, 그 이후의 사랑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때의 행복감.. 그런 것들이 어쩌면 더 로제를 떠날 수 없게 만든 건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오래된 연인들이 상대가 바람을 피워도 다시 돌아가는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근데 어쩌면 이 소설에서처럼 그 익숙함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기엔 겁이 나고, 어차피 그 새로운 것 또한 부질없는 사랑의 새로운 형태일 뿐이고 영원한 사랑이란 없다는 걸 알아버렸으니.. 새로운 상처를 받기보다 그냥 그를 용서하는 게 덜 아플 것 같은..

나는 폴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다시 돌아갈 용기는 없다. 어느쪽이든 불분명하고 부서 질건 같으니까 차라리 혼자인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거 같다. 하지만 폴은 혼자인 것보다 지루하고 불안한 그 관계 속으로 다시 돌아갔다..

 

약간 한국정서와는 안 맞는 소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된 연인을 두고 아무렇지 않게 바람을 피우고 그걸 알면서도 그를 만나고, 그녀 또한 새로운 젊은 남자를 만나고.. 읽으면서 그냥 그런 느낌이었는데 뭔가 읽고 나서 더 생각이 많이 나는 책이었다. 아주 잔잔한 여운이 남고 마지막 그녀의 대사에서 정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는 듯 독자들에게 나를 이해해 달라는 듯한 임팩트가 있었다. 

 

"나는 39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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