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 1994

감독 - 왕가위

출연 - 임청하, 금성무, 양조위, 왕페이

 

이들만의 사랑을 잊는 방법, 그리고 사랑을 찾는 방법!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면… 사랑을 지울 수 있다면…

 

중경삼림은 1994년 개봉이니 내가 거의 아기 시절에 개봉한 영화이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이영화는 전혀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세련미와 퇴폐미가 더해서 몽환적인 느낌마저 준다. 사실 찾아보지 않고서는 홍콩영화 인지 중국 영화 인지 아직은 헷갈린다. 그래서 '인생', '첨밀밀', '폐왕 별희', '아비정전', '무간도', '마지막 황제' 같은 명작들이 어디 영화인지 아직 헷갈리긴 하는데, 감히 1등을 주기는 조금은 망설여지긴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중화권 영화에서 손에 꼽을 명작 중에 하나이다.

 

영화는 두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이야기지만 무언가의 연결고리가 이어져 있다. 두 남자의 이별 이야기다. 솔직히 두 남자 주인공은 너무 잘생겨서 실연당했다기엔 비현실적이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땐 중국 남자들이 이렇게 훈훈했나 하면서 두 남자의 얼굴만 봤던 것 같다. 아무튼 각설하고 두 이야기 모두 좋아서 어떤 이야기가 더 좋다 할 게 없는 게 이 영화의 흠이다. 영화는 가볍게 보면 이별 후 찌질대는 남자들의 모습으로 볼 수 있지만, 무겁게 보면 또 한없이 무거워지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볼 때마다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고, 이영화 역시 나이가 들어가며 보는 느낌이 다르다.

 

-우리 서로가 매일 어깨를 스치며 살아가지만 서로를 알지도 못하고 지나친다 하지만 언제가는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이름은 하지무 경찰이며, 넘버 233이다.

 

첫 번째 이야기의 시작과 첫 대사 이다. 넘버 233은 여자 친구와 헤어진 뒤 자신의 생일인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으기 시작했다. 30일 안에 그녀가 오지 않으면 잊기로 한다.

그리고 그의 외로움과 그리움의 처절한 몸부림이 시작된다. 오지 않는 메시지를 기다리고 팔지않는 통조림을 사러 다닌다. 강아지와 이야기를 하고 닥치는 대로 전화도 걸어본다. 그래도 그의 외로움과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5월 1일이 오고, 파인애플 통조림을 다 먹어치우고 나서야 깨닫는다..

 

 

-나도 가끔은 예민해 질때가 있다. 그래서 항상 레인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쓴다. 비가 어느 때 올지 언제 화창할지 모르니까..

이름도 나오지 않는 노랑머리 마약밀매 중계자역의 여자이다. 이 여자는 홍콩의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마약밀매를 하고 있는데, 당시 홍콩 사회의 시대 배경과 비슷했다고 한다. 이 당시의 상황을 잘 알 수 없으나, 그녀는 항상 저렇게 변장을 하고 다닌다. 그리고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 둘은 바에서 만나게 된다.

 

 

넘버 233은 이렇게 찌질하게 말을 걸고 노랑머리 여자에게 헤어진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당신을 알고 싶다고 한다. 233은 그 누구와라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외로움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둘은 함께 밤을 보내지만, 233은 그저 그녀의 불편한 구두를 벗겨주고 닦아주고 혼자서 샐러드를 먹고 방을 나섰다.
결국 둘은 이루어질까? 그것은 열린 결말이다.

 

-이해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은 별개이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고 오늘은 파인애플을 좋아하던 사람이 내일은 다른것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 있다면 기한이 영영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꼭 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만 년 후로 적어야지.

 

그리고 시작되는 두번째 이야기

 

The Mamas & Papas의 California Dreaming과 함께 등장하는 제복 입은 양조위의 등장은 정말 너무 멋있어서 말이 안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 주인공 또한 양조위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일을 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이 샐러드 가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저 가게는 지금은 편의점이 되었다고 한다.) 경찰 633은 예쁜 스튜어디스 여자 친구에게 주기 위해 매일 밤 샐러드를 사 간다.

 

 

그러던 어느날 633은 스튜어디스 여자 친구와 이별을 하게 되고, 밖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하고 결핍을 드러내지 않지만, 자신의 공간인 집안에서는 넘버 233과 같이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린다. 밖에서는 멋진 경찰 제복을 입은 남성으로서 보이지만, 집안에서는 나시와 팬티만 입고 다니며 비누, 곰인형과 대화를 하고, 그녀가 남긴 물건들을 보며 그리워하고 또 외로워한다.

 

 

그리고 그런 그를 짝사랑하는 여자 페이, 삼촌 가게에서 일을 하던 페이는, 633을 향한 조금은 무서운 짝사랑을 시작한다. 633의 전여자친구가 두고 간 집 열쇠 키를 들고 몰래 그의 집에 들어가 물건들을 바꿔놓는다. 그녀의 꿈인지, 실제로 하는 건지 약간 구분이 안 갈 정도의 행위를 이어간다.

 

 

물고기를 채우고, 잠못드는 그를 위해 물에 수면제도 타 주고, 청소도 하고, 마치 자신의 집인 것처럼 드나들면서 지금이었으면 거의 범죄 수준이긴 한데, 이로 인해 633의 내면이 다시 평온해지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633은 그런 페이를 보면서 치유받고 있었던게 아닐까, 방에 감정이 생기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집에 침입한 페이를 보고도 633은 화는 커녕 그녀를 재워주고 데이트 신청까지 한다.

 

 

 

페이와 바에서 만나기로 한 날, 633은 전 여자 친구와 마주치게 된다. 물건을 가져가도 된다는 633의 말에 전 여자 친구는 그냥 버리라고 한다.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고 외로워했던 그녀의 물건은 그녀에게는 그저 버릴것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새 남자와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짓던, 양조위의 씁쓸하고 허무한 미소..

페이와 633은 이루어 질까. 그들은 데이트를 하고 만나게 될까? 그것 또한 열린 결말이다.


실연으로 인한 결핍은 결국 다음을 위함이다. 이영화에서도, '봄날은 간다'에서도 '500일의 서머'에서도 그것은 같다. 아픔이 지나가기 위한 시간은 분명 필요하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꼭 반드시 무언가가 다시 온다. 다시 채워지리라. 다음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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