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일 1942년 7월.. / 읽은 날 2019. 9.30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강렬한 도입부로 유명한 이방인은 카뮈의 첫 소설이다. 그리고 내가 읽은 카뮈의 첫 소설 이기도 하다. 책은 얇고, 프랑스 작가 답지 않게 복잡한 묘사보다는 깔끔한 문체라서, 잘 읽히긴 하는데, 역시나 고전은 아직 생각할 거리를 너무 많이 안겨주고 이해하기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책을 보면 반은 카뮈의 소설이고 반은 그 소설의 해설집이었다. 그만큼 이방인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엄청나 다는 건데, 처음 읽고 나서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주인공 뫼르소는 정말 이 안에서 이방인이었는지,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현실주의는 어떤 것이었는지, 이해하기 힘들어서, 책 보다 해설집이 더 두꺼웠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주인공 뫼르소. 그는 교육을 받았지만 신분 상승 욕구나 야심이 없고 생활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이상할 정도로 주위에 무관심한 청년이다. 그런 그는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후 세상에서 '이방인'이 되어 버리는데, 변호사와 재판관, 사제 등 그를 도우려는 누구도 뫼르소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 또한 주위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카뮈는 이처럼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뫼르소의 삶, 죽음에 이르러서야 신앙과 구원의 유혹을 떨치고 자기 자신과 세계를 똑바로 마주하게 되는 그의 모습을 통해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 속에 살아가는 고독한 현대인의 초상을 그린다.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 앞에서 인간의 노력이란 것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한편으로는 그 죽음을 향해 맹렬히 나아가는 인간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 생각할 수 있게 한다. - 라는 해설들을 읽으면서, 나는 아직 이해하기는 멀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해설을 더 많이 찾아보게 되었던 책이다.

 

그래서 사실 리뷰를 쓰지말까 고민도 많이 했었다. 어떤 말로 표현을 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러 번 더 읽어 보면 저런 해설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뫼르소의 저런 무관심한 행동이 정말 실존주의적 모습일까, 작가는 뫼르소의 무관심하고 귀찮아하는 행동들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개인적으로 레몽이라는 친구와의 만남이 모든 운명을 바꾼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데, 레몽과의 만남에 잘못이 있어도 뫼르소는 그냥 그런대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흘러가도록 둔다. 개를 학대하는 주인을 보면서도 그는 아무 말 않는다, 어머니의 죽음에서도 피곤함만을 느끼고, 그저 그가 반응하는 건 마리에 대한 성욕뿐이다. 그가 나쁜 사람은 절대 아니다. 그저 남들에게 무신경하고 어쩌면 어머니의 죽음이 슬프지 않았던걸 감추지 않았던 솔직한 사람이었지만, 그런 모습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보통의 사람이 아닌 이방인이었던 걸까.

 

사회는 그런 뫼르소를 부적응자처럼 만들어가고 마침내는 사형선고를 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바로 그가 이방인이 였던걸까, 관습이나 정해진 것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이방인으로 만드는 걸까? 끝까지 무덤덤하던 뫼르소는 왜 사제와의 대화에서 그렇게까지 흥분했던 걸까? 사실 아직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뭐라 다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해설을 다 읽었어도 아직 잘 모르겠다.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 볼 것 같다. 해설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의 리뷰도 그렇고, 10명의 독자가 있으면, 10가지의 생각이 있고 모두 다르게 느낀다는 게 참 흥미롭고 좋은 것 같다.

 

 

-"그렇지만 당신이 당장 죽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장차는 죽을 것입니다. 그때 가서도 같은 문제가 생길 것이오. 그 무서운 시련을 당신은 어떻게 맞을 것입니까?." 나는, 내가 지금 맞고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 시련을 맞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당신은 그럼 아무 희망도 없이, 죽으면 완전히 없어져 버린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까?" 하고 말했을 때, 그 목소리 또한 떨리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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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 출간일 1919.. / 읽은 날 2019.8.22

 

데미안은 어릴 적 분명히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내용이 하나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올해로 100주년이 된 이 책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영원한 고전이며, 누군가에게는 인생작이라고 불린다.  

데미안을 읽으면서 나는 아직 고전을 읽을 수준이 안되는 걸까? 이 얇은 책을 얼마나 오랫동안 읽었던 가. 얇다고 덤볐다가 정말 큰코다쳤다.

 

데미안은 누구일까, 신 일까, 아니면 싱클레어의 환상인가, 그가 찾고 있던 그 무언가 일까, 그저 친구일 뿐일까,아마도 싱클레어의 환상이나 그가 찾고 있던 무언가 이지 않았을까, 잘 모르겠다 사실 뭔가 데미안에 대해서 얘기해보면 할 말이 참 많을 것 같은데, 독서노트에도 그렇고 블로그에도 쓰려니 막상 어디서 곱씹어 봐야 할지 생각이 많이 드는 책이다.

 

최고의 작가다운 멋진 문장들의 향연이였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같은 그 유명한 문장들을 읽어 내려가는 건 가슴속 무언가가 꿈틀 대는 그런 감정이었다. 작가의 문체가 좋았고, 정말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정말 안 읽혔다. 일단, 성경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종교적인것에 엄청난 반감이 들었고, 그게 무슨 뜻 인지 이해가 안 가서, 읽고 싶지 않아 져서 몇 달 방치해두다가 다시 꾸역꾸역 읽어 내려갔다. 데미안의 엄마를 좋아하는 건 가히 충격적이었고, 뜬금없는 전쟁신으로의 마무리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만 이런생각을 하는 건가, 내가 이상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사실 다른 사람들의 후기나 느낌도 많이 봤었는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품인 건 맞는 것 같다.

 

모두가 극찬을 한다고 해서 나에게도 꼭 최고의 소설일수는 없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던 책이었다. 감히 내까짓게 최고의 고전을 별로라고 말할 자격 따위도 없고, 아직 이해를 못할 수준밖에 안 되는 건지도 모르겠어서 시간이 흐르면 다시 한번 읽어 볼 생각이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 보면 무언가를 느낄 수 있을까? 

 

 

-두 세계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7p

 

-종말의 시작

이별이 곧 닥칠 것이다. 나는 그걸 생각해서는 안 되었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비가 꿀 많은 꿀에 매달려 있듯 나는 아름다운 나날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나의 행복한 시절이었다. 내 인생의 첫 성취였으며 동맹에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 올까? 나는 어쩌면 다시 싸워나가리라, 그리움으로 괴로우리라, 꿈을 꾸리라, 혼자 이리라.  -2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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