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편 소설 / 출간일 1978.6.30 / 읽은 날 2019.7.4

 

대한민국에 난쏘공을 안 읽어본 사람이 있을까, 중고서점에 여러 권이 꽂혀있던 난쏘공은 입시를 위해 읽었던 그때, 어렴풋이 슬펐던 생각나서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른이 된 내가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책을 보면서 펑펑 운 것은 어릴 적 읽었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이후로 처음이었다.

 

어른이 돼서 읽게 된 이 책은 정말 지독한 현실 그 자체여서 이렇게 까지 다르게 읽힐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작가가 슬퍼하던, 그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1970년대의 현실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달라진 게 없고, 여전히. 우리는 공감하고 있다. 현재까지 거의 137만 부가 팔렸다는 이 책의 작가는 단 한 권의 연작소설로 한국 현대 문학의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된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다. 더 이상 책을 내고 있지는 않고, 아직도 난쏘공이 팔린다는 것에 40년 전 그때와 달라진 게 없어 오히려 씁쓸하다고 했다. 

 

나는 이 책이 너무 좋다. 처음부터 끝까지 슬프고 암울한 것도 좋고, 단 하나의 희망조차 없는 냉혹함과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마음 아픈 이야기들이 아프고 슬퍼서 이 책을 읽고 나서, 정말 그 여운이 며칠이나 남았던 기억이 난다. 한국소설이라 더 감정이입이 많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문구점에서 노트하나, 볼펜 하나를 사서 그 자리에 앉아서 써내려 갔다는 이 소설, 그는 대체 무엇을 보았고, 슬퍼하고 좌절했을까, 어떤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써내려 갔을까.. 작가의 문체가 너무나 좋아서 정말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찬란한 비유나 은유보다는 하나하나의 상징성을.. 담담하고 잔잔하게, 슬프게 써 내려간 문장들, 그 담담함이 오히려 슬픔을 더 부각하고 스며들게 하는.. 난쟁이, 굴뚝, 까만 쇠공, 종이비행기, 달나라..

  

나는 70년대엔 존재하지도 않았고, 서울에선 살아본 적도 없다. 집이 없어 슬퍼해본 적도 없으니, 그 철거민의 마음도 이해할 수는 없다. 그 시대의 가난과도 거리가 멀고, 그런 독재 시절에 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가슴을 울리는 건, 철거민들의 투쟁은 내가 존재하던 시대에도 있었고, 공감할 수는 없어도, 느낄 수 있는 무언가. 지속되고 있는 그 무언가. 나 또한 겪었던,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 비인격적인 대우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런 소설을 시험 문제로 출제 하고 답을 찾아가야 하기 위해 읽는다는건 참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처럼 아마도 이해하지 못하지 않을까, 까만쇠공은 어떤 의미 였을까, 그것은 소망이였을까, 희망이였을까, 아버지의 자살은 결국 달나라에 도착했다는것일까, 그런것들에 대한 명확한 답이 있을까. 

 

결국, 고기굽는 냄새와 풀냄새로 대비되는 그때의 시절과, 금수저, 흙수저로 나뉘는 지금이 다를것은 뭐가 있을까, 엄마의 꿈대로 비극이 되어버린것. 그렇게 허무하게 난장이도, 그의 큰아들도 죽어서야 그 고통을 씻어낼수 있었던것, 슬픔과 비극으로 끝나는 소설은 누군가는 싫어하고 글쓰기를 할때도 주의를 하라고 많이 봤었는데, 나는 이 엔딩이 너무나 슬프고 좋았다. 작가는 비극적인 엔딩으로 쓴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어쩌면 그말은 맞는지도 모른다. 비극적인게 아니라. 그건 너무나 현실적이니까, 끝내 노동자는 이기지 못했을거니까. 끝내 가난함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나지 못했을테니까. 그때도. 지금도.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 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외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80p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나는 아주 단순한 세상을 그렸다. 아버지가 꿈꾼 세상보다도 단순했다. 달에가서 천문대 일을 보겠다는 것이 아버지의 꿈이었다. 그 꿈을 이루었다면 아버지는 오십억 광년 저쪽에 있다는 머리카락좌의 성운을 볼수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쌍한 아버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다. 

아버지는 생명을 갖는 순간부터 고생을 했다. 아버지의 몸이 작았다고 생명의 양까지 작았을 리는 없다. 아버지는 몸보다 컸던 고통을 죽어서 벗었다.  -2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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