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설 / 출간일 1959.. / 읽은 날 2019.7.11

'유럽 문단의 작은 악마', '섬세한 심리 묘사의 대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을 꼭 읽어 보고 싶었다.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민음사의 책을 몇 권 사 왔었는데 그중 하나였다. (민음사 시리즈를 도장깨기 하고 싶었는데 개인적으로 뭔가 길쭉한 저 디자인이 좀 싫다.. 그래서 요즘 일부러 다른 출판사 책을 사려고 함 ㅠㅠ) 가장 대표작은 '슬픔이여 안녕'인 것 같은데 국내에는 이제는 잘 출판하지 않는 것 같다.

 

사강이 24세 정도에 쓴 책이라고 하는데, 오래된 연인과의 권태로움, 30대 후반의 여자에 대한 심리묘사가 정말 섬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초반에 저런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역시 대단한 작가는 떡잎부터 다르다.

솔직하게 말하면 프랑스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기욤 뮈소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이 한창 유행일 때도 읽으면서 재미는 있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였던것 같다.  뭔가 프랑스 소설 특유의 느낌이 있다. 섬세하면서 머릿속이 약간 복잡해지는 난무하는 묘사들. 이 소설도 딱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제1장

마르크가 그녀에게 특유의 무사태평한 눈길을 보냈다. 그러자 즉각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행복감이 물러가고 조롱기가 차올랐다. 그 이후에도 그녀는 다른 이들과 함께 혹은 다른 이들로 인해 행복감을 맛보았지만, 그렇게 전적으로, 그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방식으로 행복했던 것은 그 순간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이를테면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대한 기억과 비슷했다.  -10p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에서 나오는 유명한 고발 구간이 있지만, 난 이 부분이 너무 좋았다. 정말 내가 느끼던 첫사랑의 기억과 너무나 같아서.. 그리고 저 섬세한 느낌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나 다시 읽었었다. 정말 여자여자한 느낌, 지나간 부질없는 사랑이지만, 그 이후의 사랑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때의 행복감.. 그런 것들이 어쩌면 더 로제를 떠날 수 없게 만든 건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오래된 연인들이 상대가 바람을 피워도 다시 돌아가는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근데 어쩌면 이 소설에서처럼 그 익숙함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기엔 겁이 나고, 어차피 그 새로운 것 또한 부질없는 사랑의 새로운 형태일 뿐이고 영원한 사랑이란 없다는 걸 알아버렸으니.. 새로운 상처를 받기보다 그냥 그를 용서하는 게 덜 아플 것 같은..

나는 폴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다시 돌아갈 용기는 없다. 어느쪽이든 불분명하고 부서 질건 같으니까 차라리 혼자인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거 같다. 하지만 폴은 혼자인 것보다 지루하고 불안한 그 관계 속으로 다시 돌아갔다..

 

약간 한국정서와는 안 맞는 소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된 연인을 두고 아무렇지 않게 바람을 피우고 그걸 알면서도 그를 만나고, 그녀 또한 새로운 젊은 남자를 만나고.. 읽으면서 그냥 그런 느낌이었는데 뭔가 읽고 나서 더 생각이 많이 나는 책이었다. 아주 잔잔한 여운이 남고 마지막 그녀의 대사에서 정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는 듯 독자들에게 나를 이해해 달라는 듯한 임팩트가 있었다. 

 

"나는 39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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